올해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내가 출소 후 자유인으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가 된다.
나는 가족과 떨어져 여덟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것도 자유가 없는 구치소에서 한번, 그리고 교도소로 들어간 후 일곱 번이었다. 물론 그곳에서도 크리스마스는 수감자들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그날 점심에는 특식이 나오고 먹고 나면 내무반으로 들어가 특별 점호를 한다. 그때는 다들 눈치를 챈다. 점호를 하면서 과자봉투를 하나씩 던져주기 때문이다.
그 봉투를 열어보면 사회에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이상한 싸구려 사탕들도 들어있다. 아마 교도소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조차 누군가 가져갈세라 락커에 넣어 자물쇠로 잠궈두고 아껴서 먹는다.
이 ‘과자봉투점호’가 끝나면 어떤 수감자들은 방마다 돌아다니며 바꿔먹자고 한다. 교환시간이 지나면 교도소 안은 잠시 조용해진다. 다들 방에 들어가서 과자를 먹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과 얘기하기 싫어서 대꾸도 하지 않고 드러누워 있는다. 크리스마스같은 명절에 우리 가족은 늘 함께 모여 식사를 했다. 그러니 그런 날에는 가족 생각이 더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일찍 방에 들어와서 귀를 막고 담요를 둘러쓰고 일찍 잠을 청하곤 했다. 라디오에서 울려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한소절도 듣기가 싫었다. 크리스마스라는 걸 생각하는 순간 재소자인 나의 신세가 너무 처량하고 힘들어 애써 ‘오늘도 여느 날과 같은 평범한 날’이라고 생각하며 빨리 오늘이 지나가라고 잠을 청하곤 했다.
매끼마다 식당 문 앞에 줄을 서서 배식순서를 기다리지만, 특히 추운 크리스마스에 한끼 해결하기 위해 식당문 밖에서 기다리는 신세를 생각하면 눈물을 글썽거리게 된다. 그리고 이때는 산중턱에 있는 교도소 주변이 몸시 춥고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다른 죄수들처럼 스키모자 같은 걸 푹 눌러 쓰고 서있는다. 추위 때문에 옆사람하고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게 보통이다.
이런 침묵의 시간 때문에 집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이 더욱 난다. 왜 내가 이런 곳에 와서 식어 빠진 ‘특식’ 배급을 받기 위해 추위에 웅크리고 서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이내 눈가가 젖어온다. 그리고 세어 본다. 이제 몇번의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집으로 돌아가는지를.
가족 없는 크리스마스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렸다. 크리스마스날 함께 식탁에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가족들의 얼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는 춥기도 하고, 면회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가족들에게 면회오지 말라고 부탁 한다.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시간에 맞춰 “Merry Christmas!”를 하려고 집에 전화를 걸면 아버지 없는 식탁에서 식사하는 가족들의 포크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다. 이 소리가 또 나를 얼마나 가슴 아프게 하는지 모른다. 이런 소리를 들어본 지가 너무나 오래 되어 그립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 없이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는 가족들의 슬픈 얼굴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여덟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아홉 번째 크리스마스는 보호관찰기간의 첫 해 였기 때문에 집에서 조심스럽게 보냈다. 공연히 나갔다가 술 취한 사람들과 자동차 사고라도 나면 나는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보호관찰 기간도 끝나고, 나는 자유인이 되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특식을 얻어먹기 위해 식당문 밖에서 추위에 떨며 줄을 서있을 필요가 없다. 점호도 받을 필요 없고, 싸구려 과자봉투를 받을 필요도, 감출 필요도 없다. 빨리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며 잠을 청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가족이 곁에 있기 때문에 눈물을 글썽일 필요도 없다.
악몽같은 펜실바니아 알렌우드 연방교도소는 내 기억에서 하루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제는 앞만 바라보고 살려고 한다. 내 앞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두손 모아 기도해 본다. 이것이 나 자신에게 주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Merry Christmas! 이 편지를 읽는 모든 분들이 즐거운 성탄절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