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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한자 마음으로 써내려간 로버트 김의 편지입니다.


자식농사와 밭농사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06-04-13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하지만 이곳의 봄은 매우 짧기 때문에 언제 여름이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도 서둘러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농사일 때문입니다.

그동안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매번 집 뒤뜰에 손바닥만하게라도 밭을 일구어 상추, 쑥갓, 고추, 토마토, 깻잎 같은 것을 심고 가꾸어 여름 내내 갓 따낸 싱싱한 채소를 먹어왔습니다. 물론 시장에 가면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지만, 내 손으로 가꾼 채소를 따먹는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100% 무공해 채소라서 좋기도 하지요.

최근에 우리는 도심에서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뒤에는 높은 나무들이 있고 앞에 뜰도 있어서 전원생활을 즐길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집에서도 역시 텃밭을 만들었는데, 채소를 먹기 위해 작년 한해 동안 사슴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울타리를 칠 수 없는 동네라 줄을 쳐보기도 하고, 전자소음을 내어 사슴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자연의 법칙 앞에 우리 인간의 힘은 역부족이었습니다. 사슴들은 망이나 줄에도 아랑곳 않고 제집 드나들 듯 맛을 보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슴이 집 근처에 와서 노는 것을 보며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애써 가꾼 꽃과 채소들이 사슴들의 공짜 파티로 남김없이 사라져 버리게 되면서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사슴에게 크게 당한 후 이번에는 씨를 뿌리기 전에 더 높은 망을 두르고 사슴과의 전쟁을 대비했습니다. 물론 사슴이란 녀석은 높은데도 잘 뛰어 넘는 짐승인지라 우리가 쳐 놓은 보호망을 식은 죽 먹듯 뛰어넘기는 하지만, 우리로서는 조금이나마 안도감을 얻을 수 있기에 속는 셈 치고 또 땀을 흘렸습니다. 사슴들이 보호망을 우습게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데, 올해도 우리의 귀한 농사를 녀석들이 망쳐놓는다면 내년부터는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어제는 날씨가 화창해서 며칠 전에 친구로부터 받아 온 채소씨를 새로 단장한 텃밭에 고랑을 내고 뿌렸습니다. 씨를 뿌리면서 성경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씨는 우리가 뿌려도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는 말씀인데, 정말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씨는 우리가 뿌려야 합니다. 또 우리가 물도 주고 넘어지지 않게 막대기를 세워 가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넝쿨을 내면서 자라는 호박이나 오이는 줄을 잘 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자라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우리가 아이들을 기르는데 좋은 학교 보내고 가끔 용돈 주는 것만이 다가 아닌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훈계가 필요하면 훈계하고 필요하다면 매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넝쿨이 잘 매어진 줄을 타고 가면서 열매를 많이 맺는 것 같이 아이들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의 지도가 꼭 필요합니다. 여기까지가 부모가 할 자식농사일 것이고, 그들의 미래는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밭농사와 자식농사가 이렇게 같을 수가 있겠는가. 부모의 사랑이 자식 미래의 거름이 된다는 것이 말입니다.

어찌 된 일인지 그렇게 화창했던 날씨가 점점 흐려지더니 밤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가뭄에 잔디도 잘 자라지 않았는데, 하늘이 내려주신 이 잠깐의 단비로 온 세상이 초록색 담요를 깔아 놓은 것 같습니다. 어제 뿌린 채소씨가 흙 속에서 잠을 깨고 기지개를 켜고 있으리라 생각을 하니 ‘그들도 하나님께 감사하겠지’ 싶어 즐겁기만 합니다.

금년 여름에는 우리 두 노친네의 밥상에 싱싱한 채소가 풍성하게 놓여지기를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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