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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의 슬기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06-04-19
얼마 전에 기러기와 피라미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또 기러기 얘기를 하게 됩니다. 아마 기러기는 슬기로운 날짐승이라 우리가 본받을 것이 많아서일 겁니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겠지만, 봄이 오면 이곳에도 수많은 기러기들이 들판을 누비기 시작합니다. 기러기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먹이를 찾으러 다니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비교적 몸집이 큰 이 새는 이맘때가 되면 두 마리씩 짝을 지어 다니는데, 일단 짝을 맺으면 최소한 일년은 함께 다닌다고 합니다. 기러기는 특히 봄에는 부부간에 애정을 자랑하며 어디든 붙어다닙니다. 그리고 혼외정사 없이 배우자에게 충실합니다.

녀석들은 사람이 지나가면 도망가지 않고 도리어 소리를 내면서 공격을 해옵니다. 소리는 주로 숫놈이 지르는데, 그는 자기는 물론 암컷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입니다. 기러기들이 새로 나오는 푸성귀만 골라 먹어 치우는데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번식을 위해서는 충분한 영양섭취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년간 미국 교도소에서 생활할 때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는 넓은 들판에서 걷기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러기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철조망이 아무리 높아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기러기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신기한 것은 기러기들은 둥지를 절대 철조망 안에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녀석들도 교도소가 싫었거나 죄수들을 믿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교도소 영역에 알을 낳으면 죄수들의 영양소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수감자들이 언제 둥지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을 이끌고 철조망 밖을 유유히 걸어다니는 기러기 부부를 보곤 했습니다. 기러기 가족들을 보면 나는 집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들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새끼들은 성장이 매우 빨라 늦여름쯤 되면 누가 어미고 새끼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가 되는데, 비행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 새끼들을 알아차리곤 합니다. 가을이 되어 먼 곳으로 날아가게 되는데, 장시간의 비행에 대비해서 들판의 풀들로 쉴 새 없이 영양보충을 합니다. 풀들은 채 자라지도 못하고 기러기 먹이가 되는데, 한편 기러기들의 배설물이 거름이 되어 풀들은 금방 잘 자랍니다. 이것 또한 자연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산불을 최대한 막으려고 하지만, 어떤 산불은 필요악이기도 합니다. 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이듬해 새로운 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처럼 자연은 지혜롭게 상생합니다.

우리나라는 이혼율이 가장 많은 나라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부모가 이혼을 하면 아이들은 편부나 편모 슬하에서 자라야 하는데, 이는 참 불행한 일입니다. 저는 세상 부모들은 기러기한테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기러기들은 새끼들이 혼자 비행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하고 기르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은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보살펴 주지 못한다면 기러기보다 못하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자연이 이어온 사랑의 법칙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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