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달 조용히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작년에 부모님께서 잠들고 계시는 곳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봄이 매우 매우 아름답다는 소리를 듣고, 겸사겸사 다시 다녀왔습니다. 철이 좀 이른 것 같았지만, 꽃들이 피기 시작하고 일기가 화창해서 참 좋은 인상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름다운 곳에 저희 부모님들께서 잠들어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돌아가신 부모님들을 찾아뵙는 것은 자식된 도리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기다리시던 아들의 석방을 눈앞에 두고 눈을 감아야 하신 두분의 안타까움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이번에는 단 하루였지만 우리 4형제가 모두 함께 부모님의 영전을 방문할 수 있는 참 좋은 기회도 가졌습니다. 부모님들이 얼마나 흐뭇해 하실까, 를 생각하니 저희 마음도 훈훈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무 공식 계획이 없는 여행이라 우리 부부는 같이 하는 사람 없이 둘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처음으로 설악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고, 저를 곤경에 빠지게 했던 북한의 잠수정이 있는 강릉 정동향 통일공원에도 갔었습니다.
그 잠수정을 보고 있으려니 감회가 착잡했습니다. 그리고 이 도발적이고 비겁한 행동 때문에 많은 인명 피해 뿐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하는 북한정부의 처사가 원망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강산이 남북으로 분단되어서 이산가족이 생겨났고 이제는 문화와 언어까지 달라진 우리의 처지가 처량하기까지 느껴졌습니다.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어 있지 않았던들 나의 운명도 이렇게 달라져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강릉에서 일반 고속버스를 타고 포항을 거쳐 우리 문화의 집결지인 경주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경주 국립박물관을 비롯해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안압지, 왕릉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당시 우리 선조들이 이런 것을 만들 때 서양에서는 어떤 것을 하고 있었는가를 비교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또 남쪽으로 내려와 지리산에도 가보고 그 거대한 산 사이로 잘 포장된 도로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자랑인 POSCO 광양제철소에 들려 그곳의 친절한 안내로 24시간 움직이는 웅장한 시설에서 철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도 느꼈습니다.
서울에 와서는 최근에 개방된 국립중앙박물관, 복원된 창덕궁, 세계가 부러워하는 청계천에도 가보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사통팔달로 이어지는 서울 지하철의 효율적인 운행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세종대왕의 동상이 서울 복판인 여의도공원에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분의 슬기가 없었던들 우리가 한국말을 하고 한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감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도시를 가꾸어 놓았는데, 그것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민도가 따라가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름답게 치장된 거리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오물의 악취로 인해 불쾌감을 주는 곳이 많았으며, 시내 복판에서 자동차와 사람들이 인도 위에 함께 엉켜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거리 이름이나 지역 이름을 영어로 표기한다고 했는데, 본래 발음대로 표기되어 있지 않아서 외국 사람이 우리말 비슷하게 발음하기가 매우 불편할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것들에 조금만 신경써주면 아름다운 우리 산천과 도시를 세계에 자랑하고 관광 수입도 올릴 수 있을텐데, 사람들을 오라고 해놓고 막상 그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취향을 무시하고 푸대접하면 누가 다시 찾아오겠습니까.
이번 여행 동안 우리는 배낭 메고 평범한 복장으로 다녔는데,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감사하면서도 미안했습니다.
이번 봄 한국여행은 나에게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하였으며, 아직도 보고 싶은 것과 먹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 한국의 가을정취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