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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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수혜자인 백동일 대령과의 만남

미국이 공모자라고 주장하는 로버트 김과 백동일 대령은 10개월 동안 불과 서너차례,
그것도 회의나 행사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난것이 대부분이었고, 그 외에는 짧은 전화를 통해 간단한 안부를 물었고, 정보제공은 우편이나 팩스를 통해 이뤄졌다.

미국의 안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한국에서는 꼭 알아야 했던 정보제공

로버트 김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은 주미 한국대사관의 백동일 대령은 당시 정보 수집의 임무를 가진 장교였다. 그와 로버트 김은 1995년 11월 28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해군 정보교류회의>에서 처음 만났다. 로버트 김은 이 회의에서 통역과 안내를 맡았다. 회의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앤드루 미 공군기지의 장교클럽에서 함께 식사를 하던 중 그는 로버트 김에게 “정보수집 능력에 한계가 있는 한국으로서는 북한군 관련 첩보를 제대로 입수하지 못하니 기밀이 아닌 사항은 도와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로버트 김은 “한국군의 대북 첩보수집 여건이 그렇게 열악하냐?”고 되물은 후 “도와줄 수 있는 한 도와주겠다.”고 답했다. 이후 로버트 김은 한국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자료를 우편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이 정보들은 미국의 안보나 재산(인명피해 포함)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Damage Assessment Report(피해평가보고서)를 재판관에게 제출할 수 없었다. 이런 사건에서 꼭 제출해야만 하는 아이템이며, 로버트 김의 변호사로서는 당연히 판사가 검사에게 이 보고서 제출을 명하도록 요구해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했다.

1996년 9월 18일, 북잠수함 침투사건으로 남북은 물론 한미 양국관계에도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당시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당사자들(남북한)은 우리가 남북대화나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진전시킬 수 있도록 추가적인 도발행위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문스런 발언을 했다. 그 사건은 분명 불가침 합의를 깨고 남한 영토 안으로 들어온 북한의 도발행위인데도 한국의 동맹국이라는 미국은 남북한을 동급으로 놓고 자제를 요구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에 백동일 대령은 미국이 북잠수함의 이동로를 알면서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 그 증거를 찾기 위해 로버트 김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로버트 김은 “미국이라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며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다.

그 후 3일 전으로 소급하여 북잠수함의 경로를 추적했고, 두 대의 잠수함이 동해안을 오고 간 위치들이 추적되었다고 백 대령에게 통화로 알려주었다.
이날 통화 이후 얼마 안되어 로버트 김은 간첩혐의로 FBI에 의해 체포되었다.


로버트 김이 한국에 제공한 정보들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로버트 김이 백대령에게 1995년 12월부터 제공한 자료는 약 50여 건인데, 이 중에는 미국의 주장처럼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해가 될 만한 내용은 없었다. 그것들은 주로 미국이 아닌 한반도 정세와 관련된 것이었고,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에는 이미 제공된 것들이었다.
사건 담당 검사는 법정에서 “어떤 정보가 미국 안보에 중요한 것인지, 그것이 왜 공유되지 않았는지는 미국의 고위 관리들이 결정할 사항이다”라고 말했지만, 해군 정보국에서 19년 동안 일해온 로버트 김이 어떤 게 민감한 정보인지 모를 리 없었다.
그의 변호사였던 피터 긴스버그도 “로버트 김이 한국에 넘겨주었다고 주장하는 서류들은 역으로 미국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 정보들은 대중을 상대로 한 정기간행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동맹국과 공유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다...”라고 변론하였다. 그러나 이 변론은 검사나 판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의 저명한 기밀 분류 전문가들조차도 로버트 김이 한국 해군에 제공한 정보는 미국으로서는 매우 중요하지 않거나 기밀이 아니며, 대부분은 우호적이고 협조적인 미국의 공식채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라고 신문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는 한미 양국이 당연히 공유해야 할 정보를 제공, 결코 간첩행위가 아니다.

로버트 김이 백동일 대령에게 서류를 보낼 때는 자료출처와 비밀등급을 지우고, 반송될 경우를 대비해서 자신의 주소를 써서 우편으로 보냈다. FBI의 감시 자료에 의하면 로버트 김이 백 대령의 집에 직접 갔다가 그가 없자 정원에 있던 아들에게 전해주기도 했고, 자신의 사무실에서 백 대령에게 서류를 잘 받았느냐고 전화하는 모습도 찍혀있다.
그리고 1996년 9월, 10여건의 기밀서류가 전달될 당시 봉투가 개봉된 흔적이 있어서 자료 제공을 중단한 일도 있었다. 이런 행동들로 인해 두 사람은 첩보 분야 종사자들로부터 ‘어설픈 삼류 스파이’라고 지적 받았는데, 달리 말하면 그것은 두 사람에게 스파이 행위를 한다는 인식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로버트 김은 한미 군사동맹과 정보 공유라는 관행에 비추어, 당연히 한국이 알아야 할 정보를 전달했던 것이다. 또한 이런 자료들이 한국에 전달되지 않은 이유는 미국이 한국측에 고의로 보내지 않고자 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의 결점 때문일 수도 있다고 판단, 이를 시정하기 위해 상부에 보고하려던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