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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김 약력
로버트 김 사건
  - 사건개요
  - 관련일지
  - 백동일 대령과의 만남
  - 불리한 당시 정황들
  - 정보제공의 필연성
  - 조나단 폴라드와 비교
  - 앞으로의 과제
옥중서신
 
Home > 로버트 김 소개 > 로버트 김 사건 > 조나단 폴라드와 비교
 
  조나단 폴라드는 미국 텍사스주 출생으로 1979년 미해군정보국에 들어갔다. 1984년경부터 이스라엘 정보기관과 접촉해 미국의 국가기밀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그 양이 무려 1천여건이나 되었고, 심지어 미국의 첩보위성이 촬영한 중동지역의 군사시설에 대한 극비사진까지도 건네주었다. 물론 그 대가로 4만 달러를 받았다.
폴라드는 자신의 범죄행위가 드러나자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피신해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그와 접선한 요원들은 이미 이스라엘로 도주한 뒤였으므로 폴라드의 역할에 대해 알 수 없었던 대사관은 FBI에 그를 인도했다. 이 사실을 안 이스라엘 국민들은 자신의 안전만 챙기기에 급급했던 정보국 요원들과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의 무능에 분노를 터뜨렸다.
폴라드는 스파이 혐의로 구속되자 형량을 조금이라도 낮출 요량으로 플리바겐을 했다. 하지만 당시 와인버거 국방장관이 “이보다 더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위해를 끼친 예는 상상할 수 없다. 폴라드는 사형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법원에 보냈고, 이 편지는 판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폴라드가 구속되자마자 당시 이스라엘의 라빈 국방장관은 “국내의 원자력과 기간시설에서 활동해온 미국 스파이 5명을 적발했다”고 발표하여 미국에 대한 반격을 가했다. 미국이 폴라드를 체포한 것처럼 이스라엘 역시 마음만 먹으면 미국 스파이를 적발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로버트 김과 조나난 폴라드 두 사람 모두 현재 수감 중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폴라드에 대해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고, 지금도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반면 로버트 김은 자신이 제공한 정보로 인해 많은 도움을 받았을 한국 정부의 목소리를 거의 듣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미국의 원자탄 기술을 중국에 제공한 혐의로 붙잡힌 리웬호(Peter Lee) 박사의 경우를 기억해야 한다. 당시 미국 거주 중국인은 물론 중국 정부도 미국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다. 로버트 김과 기소조항(18USC Section 793)이 똑같은 Peter Lee도 10개월 형을 받고 풀려나왔다.

국가간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안의 경우 해당국가가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느냐가 한 개인의 일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