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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김 약력
로버트 김 사건
  - 사건개요
  - 관련일지
  - 백동일 대령과의 만남
  - 불리한 당시 정황들
  - 정보제공의 필연성
  - 조나단 폴라드와 비교
  - 앞으로의 과제
옥중서신
 
Home > 로버트 김 소개 > 로버트 김 사건 > 불리한 당시 정황들
 
북한 잠수정 동해안 침투 사건  
  로버트 김이 체포되기 정확하게 6일 전, 한국에서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강원도 강릉시 안인진리 해안으로 북한의 상어급 소형 잠수함이 침투하여 좌초된 초대형 안보사건이 터진 것이다. 당시 우리 국방부는 원산 송전반도에 있는 북한 해군 잠수함 기지에서 두 척의 상어급 참수함이 출동했고, 그 중 한 척이 원산항으로 되돌아온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은 나머지 한 척이 강릉으로 침투한 것인데, 미국의 첩보능력으로 미루어 보면 이 잠수함의 이동로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백동일 대령도 이같은 생각을 하였고, 그 증거를 포착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 로버트 김에게도 그와 관련한 정보를 요청했다.

외교관이 쓰는 전화는 100% 주재국의 외사방첩기관에서 도청한다. 하지만 백대령은 한국에서 일어난 워낙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과거의 예로 보아 정보를 요청하면 당연히 미국측에서 기밀이 아닌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믿고 미 국방부의 정보본부(DIA)와 미해군성의 정보 참모부(I-2)와 작전?기획참모부(N-3&N-5) 등에 전화를 걸어 자료제공을 부탁하였다.
로버트 김은 백대령의 부탁으로 해군정보국의 컴퓨터를 통해 북 잠수함 사건이 언론에 터지기 직전부터 사흘 전까지의 모든 정보를 검색해본 결과 북 잠수함이 동해안에 좌초되기 전부터 미국은 한국의 영해로 들어온 북 잠수함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미국은 북 잠수함이 동해안에 좌초되면서 그 실체를 알았던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북 잠수함의 침투를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결국 로버트 김의 체포도 이 사건과 연관이 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바빴던 한국 정세
  최종 재판이 열리기까지 10개월이나 걸리게 되면서 로버트 김의 존재는 점차 사람들부터 잊혀져 갔다. 구명위원회의 활동도 소강상태였는데, 아마 비싼 돈을 들여 유능한 변호사를 구했으니 일이 잘 풀리리라는 낙관적인 기대에서였을 것이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는 김영삼 정부의 권력 누수현상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재벌들의 부도와 한국의 경제위기설이 파다하게 펴지고 있었다. 당시 세인들의 관심은 ‘한보비리와 청문회‘ 등으로 쏠려있었다. 한보 정태수회장의 재판이 열릴 무렵에는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 비리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있어 이국 땅에서 힘없는 한국 교포 한사람이 미국이라는 골리앗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로버트 김이 구속되었을 당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미국 시민권자인 로버트 김이 미국의 사법제도에 의해 처벌되는 것은 미국 내부의 문제로 방치했다.
이후에도 로버트 김이나 가족들의 탄원서에 대해서도 그의 정보제공이 무관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지 한국 정부가 관계된 간첩행위는 아니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미묘한 한미 관계
  1996년 9월 18일, 북잠수함 침투사건으로 남북은 물론 한미 양국관계에도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당시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당사자들(남북한)은 우리가 남북대화나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진전시킬 수 있도록 추가적인 도발행위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문스런 발언을 했다. 그 사건은 분명 불가침 합의를 깨고 남한 영토 안으로 들어온 북한의 도발행위인데도 한국의 동맹국이라는 미국은 남북한을 동급으로 놓고 자제를 요구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에 백동일 대령은 미국이 북잠수함의 이동로를 알면서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 그 증거를 찾기 위해 로버트 김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로버트 김은 “미국이라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며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다.

그 후 3일 전으로 소급하여 북잠수함의 경로를 추적했고, 두 대의 잠수함이 동해안을 오고 간 위치들이 추적되었다고 백 대령에게 통화로 알려주었다.
이날 통화 이후 얼마 안되어 로버트 김은 간첩혐의로 FBI에 의해 체포되었다.

무능한 변호사들, 그로 인한 엄청난 결과
  ①관선 변호사에 대한 오해
로버트 김 사건을 처음 맡은 변호사는 관선 변호사인 짐 클라크였다. 미국의 관선 변호사는 사안에 따라 판사가 거기에 맞게 임명하도록 되어있다. 실제로 짐 클라크는 당시 형사 담당 변호사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 상식으로는 관선 변호사라고 하면 무능하거나 무성의하게 변론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그 또한 예외가 아니었고, 관선 변호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물론 짐 클라크의 명성을 알리 없었기에 그의 가족들은 민선 변호사인 피터 긴스버그를 변호사로 선임했다.
하지만 검사에게 끌려다니며 그를 제대로 변호하지 못하는 긴스버그에게 실망한 그와 가족들은 좀 더 이름있는 변호사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②변론보다는 돈에만 관심이 있던 변호사들
이 때 미국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정?관계에 아는 사람들이 많다는 김목사를 소개받게 되었다. 김 목사는 고어 부통령의 사촌인 제임스 고어를 추천했고, 가족들은 정치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형사 전문변호사가 아닌 민사 전문임에도 변호사 교체를 원했다.
하지만 고어 변호사를 인터뷰한 로버트 김은 그의 능력을 의심하였는데, 고어는 또 다른 변호사를 데리고 와 둘이 함께 변론을 하겠다고 해서 결국 선임하기에 이르렀다. 그 다음날 김목사는 미의회와 관련된 업무가 있어 한국에 가게 되었다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정작 한국에 가서는 로버트 김 가족들을 만나 변호사 계약을 하고 돌아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김목사란 사람은 사건을 소개하고 수임료 형식의 사례금을 챙기는 일개 사건 브로커였다.

그 후 로버트 김은 그들을 거의 만날 수 없었고, 연락을 할 때마다 다른 사건으로 법정에 갔다는 연락만 받았다. 피의자가 유죄를 인정(guilty plea)한 다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 증거를 다시 보는 기간이 있는데, 그 증거들이란 게 모두 기밀로 분류되어 있어 변호사는 기밀취급인가(security clearance)가 있어야만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고어는 인가를 신청했으나 기각되었고, 다른 변호사는 이전에 한번 받은 인가를 갱신했는데, 의뢰인과 함께 보아야 함에도 혼자 가서 보고 왔다고 하였다. 로버트 김은 과연 그가 증거자료를 열람하고 왔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했다. 변호사란 사람이 의뢰인을 보호하기는커녕 검찰측 대변인처럼 유죄를 인정해야만 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후 그들은 다시 신출내기 변호사를 기용해서 로버트 김이 여러 정보기관 관계자들에게 심문을 받을 때 변호인 자격으로 배석하게 했는데, 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중요한 증거 열람기간은 끝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