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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김 약력
로버트 김 사건
  - 사건개요
  - 관련일지
  - 백동일 대령과의 만남
  - 불리한 당시 정황들
  - 정보제공의 필연성
  - 조나단 폴라드와 비교
  - 앞으로의 과제
옥중서신
 
Home > 로버트 김 소개 > 로버트 김 사건 > 정보제공의 필연성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로버트 김의 부친 김상영 옹은 한국은행 부총재와 초대정경련 상근부회장, 8?9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경제연구소인 <산정연구소>를 운영하는 등 한국 정치?경제계의 원로로 꼽히는 인물이다. 김옹은 가진 재산이라고는 거주하던 아파트 한 채 뿐일 정도로 청렴결백하게 평생을 살아왔다. 한국은행 부총재라는 높은 지위에 있었음에도 아들인 로버트 김을 전방에서 군생활을 하도록 했으며, 유학을 떠날 때도 규정대로 50달러만을 주어 보낼 정도로 원리원칙을 지키는 분이었다.

그의 동생인 김성곤은 고려대학 문과대학 학생회장으로 반독재투쟁을 하던 중 지난 1974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투옥되었고, 결국 학교에서도 제적당했다. 이 사건은 아버지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2선 국회의원이던 김옹을 공천하지 않아 결국 정계를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탓하지 않았고, 오히려 옳은 일은 한 아들의 용기를 칭찬하였다. 이후 복학이 불가능해 방황하던 동생 성곤은 형인 로버트 김의 제의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템플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 10여 년만에 금의환향하여 대학교수가 되었다가 지난 1996년 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 부자가 같은 지역에서 대를 이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흔치 않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동생의 국회의원 당선은 로버트 김의 조국애가 한층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미국 사회에서 인정받는 엘리트로 살면서 자신을 낳아준 조국에 뭔가 뜻 깊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백동일 대령의 요청에 대해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에 대한 배신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미국시민이 된 후 23년 동안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성실하게 살아왔고, 명예롭게 은퇴한 후 노후를 보내려는 계획을 갖고 있던 그였다.

열악한 한국의 정보 수집 능력  
  당시 일본 정보당국에서도 북한 잠수함이 동해에 자주 나타났고, 심지어 제주도 근해에까지 항적을 남기고 있었음을 포착하여 일본 정계 고위급 인사들이 한국의 지인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알려주기까지 했음에도 우리 군 당국만 과학적 정보수단 부족으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로버트 김이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에게 올라오는 한반도 관련 정보가 미국 동맹국 중 알 필요가 없는 나라에는 나가면서 정작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로서는 그 점이 안타까웠고, 이해되지 않는 면도 있었다.

정보수집이 강화되면 강한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에 불과하지만, 대단한 정보수집력으로 국제사회에서 결코 무시하지 못할 국력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중요한 정보, 심지어 바로 코 앞에서 대치하고 있는 북한과 관련된 정보조차 대부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