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김 후원회 - 우리는 그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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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9월27일이후에나 가능합니다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4-08-14

로버트 김 후원회 회장 이웅진입니다.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저희도 최선을 다해 추진하던 로버트 김의 방한 계획에 다소 차질이 생겼습니다.
현재로서는 9월 27일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 이른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특히 후원회를 이끌고 있는 저의 오류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로버트 김과 처음 만난 후 6년, 후원회 1년 동안 사회, 정의, 조국 등 중요한 가치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는데, 이번 방한 계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문제들을 통해 새삼 깨달은 것들도 있어
기록으로 정리하면서 좀 더 나은 판단과 자세로 향후 남은 사업을 진행해 나가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로버트 김 방한과 관련해서 관심을 가져준 외교통상부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국가적 사안도 아닌 한 개인문제를 놓고 외국 정부 부처에 전화 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로버트 김의 새로운 보호관찰관인 루타 베일리(Ruta Bailey)는 왜 자주 전화를
거느냐면서 서면으로 처리해달라고 했는데, 이런 요구 이면에는 미국 시민권자인 로버트 김 문제에
한국정부가 나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전화가 아닌 공문으로 업무가 이뤄지는 미국식
업무처리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오해인 것 같습니다.

베일리로 대표되는 대다수 미국인들은 한국의 현실,
한국인의 정서와 소위 말하는 한국식(Korean style)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로버트 김 사건도 결국은 한국과 미국, 겉으로는 오랜 동맹국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너무 틀린 것이 많아 어쩌면 먼 나라일 수도 있는 현실 속에서 발생했고,
사건 후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런 괴리감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이 처한 분단의 현실, 거기서 우리가 느끼는 고민과 아픔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국전쟁에서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고, 한국은 미국이 추구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였음에도 말입니다.

매일 북한과 보이지 않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긴장된 상황 속에서 국가 안보를 위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대북 정보의 90% 이상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 거기서 로버트 김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다시 한번 동맹의 의미를 묻고 싶습니다.
한미동맹은 냉전시대에 이뤄졌고, 그런 이유로 한국인들은 미국을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궁극적인 보호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한국정부와 한국인들의 이런 생각을 모를 리 없었고, 그러다 보니 한미 관계, 특히 군사동맹은
종속적인 관계의 틀은 오늘까지 그 원형을 유지한 채 이어져 왔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동맹은 ‘동일한 목적을 이루거나 이해를 함께 하기 위해 공동 행동을 취하기로 하는 맹세’라고 되어 있습니다. 굳이 이런 사전적인 의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의 상식으로 보면 동맹을 수평적인 관계입니다. 더구나 냉전체제가 깨어진 지 이미 오래이니, 한국은 미국을 보호자로 보지 말아야 하며,
미국 또한 한국을 속국 정도로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미국이 한국전에 30만 명이 넘는 병력을 파견한 최대 참전국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정서로 볼 때 미국은 우리를 도와준 고마운 나라이며, 그래서 대다수 한국인들은 미국을
우방으로 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월남전을 비롯해서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걸프전 등에 군대를 파견하였습니다.
그리고 비록 비 전투요원이라고는 해도 전시상황에 있는 이라크 파병을 어렵게 결정하였습니다.
이는 한국은 미국에 대해 동맹국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며, 한국식으로 말하면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우리는 왜 미국은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에는 공개되는 북한관련 정보를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에는 알려주지 않아 결과적으로 동맹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
비록 로버트 김이 미국법을 어겨 재판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사건의 발단이 한미 군사동맹의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이
참작되지 않았는지 알아야만 합니다.

문득 18세기 영국의 정치가인 팔머스턴 경이 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오직 영원한 국가 이익이 있을 뿐이다”라는.
혹 한국이 미국에게는 영원한 우방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필요에 따라 당겼다가 밀어버리는 ‘선택적 우방’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로버트 김 방한을 돕기 위해 자주 전화를 건 한국대사관을 두고 베일리는
"미국식 사무방식을 모르는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결국 로버트 김 방한문제와 관련해서 우리 외교통상부가 했어야 하는 일은
로버트 김의 방한을 승인한다는 공문을 미국측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일을 잘해보겠다고 직접 전화를 건 것이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외교부가 아닌 저의 오류입니다.
방한계획을 공식화하고, 그 필요성을 여론으로 정당화해서 외교부를 재촉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담당 공무원들로서는 여론화되는 문제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고,
재촉해서라도 빨리 해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내부적인 문제야 한국식으로 해결해도 되지만, 대외적인 문제는 상대국의 방식을 고려해서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게 원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을 법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하는데, 170여 인종이 모여 사는 다민족국가인 미국이 언어와 종교,
가치관이 다른 이들을 ‘미국인’으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의 집행이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일 민족국가입니다. 법 이전에 한국인 특유의 방식이 있고, 이것은 때로 절차가 생략되어
베일리의 경우처럼 법을 모르거나 질서 없는 나라라는 인식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외교부가 이왕이면 서류를 통해 공식적으로 처리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일은 여론을 믿고 일을 추진한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가장 많습니다.
부모님에 대해 자식으로서의 마지막 도리를 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 동안 크고, 깊고,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준 많은 분들을 뵙고 싶은 마음,
로버트 김이 한국 방문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은 이 두 가지 마음 때문입니다.

저는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으며,
조만간 방한이 이뤄질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집으로 찾아온 베리 레이몬드.
R: 앞으로 내가 당신을 감시할 보호관찰관이다.
K: 그런가.
R: 오늘 당신의 발목에 감지장치를 부착하러 왔다.
K: 알겠다.
R: 이 감지장치를 채운 이 시간부터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그리고 목욕은 안되고, 샤워만 해야 한다. 아무리 방수시계라도 더운 물에 오래 있으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K: 아시다시피 저의 부친이 최근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한국에 조속한 시기에 나가고 싶다.
R: 가택 연금이 끝나면 석방이 되니까 그때 방한신청을 해라. 그리고 그 결정은 판사가 할 것이다.
K: 내 부친이 위독할 때 판사에게 한국방문허가 요청을 했는데, 판사가 회신한 편지가 있다. 내가 알기로는 그 편지 사본을 당신이 받았다고 알고 있다.
R: 그렇다.
K: 그러면 그 내용을 봐서 나의 조기 방한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냐.
R: 판사가 가능한 쪽으로 이야기 했으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집으로 찾아온 베리 레이몬드.
R: 발목이 불편하지 않냐.
K: 샤워도 불편하고 산책운동 할 때도 긴 바지를 입어야 하니 이 한 여름에 곤욕이다.
R: 불편해도 교도당국의 지시니까 참아야 한다. 그래도 교도소 생활보다는 집에 있는 것이 낫지 않느냐.
K: 나는 한국의 조기방문을 위해서 아무 불평이나 사고가 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이다.
R: 두 달간이니 견딜 만할 것이다. 8년을 교도소 생활을 한 사람인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아침에 변호사를 연방 감찰기관 대리실에서 만났다. 그리고 관찰관의 지시대로 전자 몸수색 문(비행기 탈
때 통과하는 것과 비슷)을 통과해서 그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관찰관은 많은 지시를 했다. 또 많은 서류에
서명도 했다.
다음은 그날 내가 관찰관으로부터 받은 보호관찰 규정과 법원이 제시한 특별조건 중 일부이다.

R:또 다른 질문 있는가?
K:가장 급한 일은 한국 조기 방문인데, 방한 신청은 언제쯤 할 수 있나?
R: 신청서를 내 앞으로 보내면 검토해서 판사에게 보내겠다. 판사가 최종결정을 내릴 것인데, 나도 거기 따르겠다.

7월 29일자로 씌여진 편지를 받았는데, 새로운 관찰관을 만나라는 내용이었다. 8월 11일 아침, 아내와 함
께 루타 베일리를 만나러 갔다. 그녀는 나이든 백인 여자였다.

B: 내가 지금부터 당신의 관찰관이다. 무슨 질문이 있는가?
K: 지금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한국 조기 방문이다.
B: 왜 그렇게 급히 가려고 하는가?
K: 부모 두 분이 다 나의 출소 몇 달 전에 돌아가셨는데, 장남으로서 도리와 집안 정리 할 것들이 있어서 그렇다.
B: 매우 슬픈 일이다. 형제가 한국에 있는 것으로 안다. 몇 명이 있느냐.
K: 한국에 둘 있다.
B: 그러면 전화로 상의하면서 처리해도 될 것 아니냐. 그리고 석방 후 60일 간은 여행도 할 수 없는 것 아느냐.
K: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지시 받거나 지시서에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B: 미안하다. 그런 규정이 있는 것을 미리 알려줘야 했는데..
K:1996년 체포 당시 여권을 압류 당했는데, 그것이 분실되었다고 들었다. 여권을 내기 위해 당신의 허가서가 필요하다.
B: 이 지시사항에 쓰인 바와 같이 여권은 감찰기관 동안에 신청할 수 없다.
K: 안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럼 그 동안 여권이라도 발급 받아야 겠다. 그런데 당신의 허가서
가 첨부되어야 한다.
B: 그러나 해외 여행 허가는 판사의 관할이기 때문에 너의 여행목적, 여행기간, 해외 거주지를 명시한 허가 신청서를 당신이 작성하고 법원에서 너의 여권이 분실 되었다는 회신을 첨부해서 나에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그 신청서를 내가 본 후에 판사에게 보내겠다.
K: 나는 아이들과 친척들이 멀리 산다. 그들도 가서 만나보고 싶다.
B: 그렇다면 그들이 와서 만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 내의 48주(하와이와 알래스카를 제외한)도 석방 후 60일이 지나야 여행 허가서를 제출할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의 한국방문은 현재로서는 어렵다.

B: 그런데 당신의 방한 문제를 놓고 왜 한국 대사관에서 매일 전화를 걸어 오느냐.
K: 글쎄...
B: 그들이 미국의 사무방식을 모르는 것 같다. 서신을 통해서 물어보고 또 서신으로 회신 하는 것인데, 매일 똑같은 질문을 전화로 하니 너무나 난처하다. 지금부터 전화 걸지 말라고 해달라.
K: 알겠다.
B: 당신의 방한은 그들이 나서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K: 내가 한국 방문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에서 나의 방한을 수락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B: 그래도 일의 순서가 있다. 먼저 당신의 방한 허가가 나오고 그 수속이 진행될 때 그들의 일도 시작되는 거 아니냐.
K: 안다.
B: 여권도 금방 안 나온다는 것을 아느냐.
K: 그래도 급할 때는 특별 수수료를 내면 빨리 나오는 것으로 안다.
B: 그래도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또 당신의 여행은 석방 후 60일이 지나야 하니까 급하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K: 그러면 내 여권 분실 사실 서신을 받으면 곧 여권 발급 신청허가서와 함께 보내겠다.
B: 그런데 당신은 직접 법원에 그런 요구를 할 수 없으니 변호사를 통해서 하도록 하라. (이것은 틀린 말이다. 내가 교도소에 있을 때도 법원에 직접 편지하고 답변을 받았다.)

Bailey와의 이번 대화에서 석방 후 60일 내에 아무 여행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실망했다.
지금까지 나는 이런 규정이 쓰여진 문서도 본 적이 없었고, 이전 보호관찰관인 Raymond도 이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다. 내가 7년 이상을 살던 교도소에서도 이런 사실은 들어보지 못했다.

내 방한에 기대를 걸어온 많은 분들께 실망을 시켜드려 죄송스럽다. 내 마음도 무척이나 안타깝다.
나는 부모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이다. 하루빨리 산소라도 찾아 뵙고,
두분 생전에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불효를 용서 받고 싶다. 그리고 그 동안 내 삶의 끈이 되어준
많은 한국 동포들을 직접 만나 감사의 뜻을 꼭 전하고 싶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보호감찰 기간이 끝나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무엇보다도 기간을 줄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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